권예윤
權藝潤1910. 1. 24 ~ 1935. 4.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동청년동맹
- · 안동콤그룹
- · 적색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910년 1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上洞, 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다. 1927년 안동공립보통학교(安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안동군청(安東郡廳), 영양군청(英陽郡廳)에서 임시 고용인으로 생업을 삼았다. 퇴사 이후 인쇄업에 종사하였다. 1930년경 안동청년동맹(安東靑年同盟)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항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청년동맹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1월 1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형무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해서 전개하였다. 1931년 4월 10일 안동콤그룹에 가입하였다. 안동콤그룹은 안상윤(安相潤)·이필(李鉍)·권중택(權重澤) 등이 중심되어 3월 20일 안동역사(安東驛舍) 예정 부지에서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안동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던 이회승(李會昇)이 검거됨에 따라 독립운동이 소강 상태에 들어가자, 안상윤 등이 침체된 독립운동의 열기를 일으켜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고 독립국가에서 사유재산제도 철폐와 공산주의 체제를 수립할 목적으로 조직을 결성하였다. 안동콤그룹에서 조직부 위원으로 활동하던 권중택의 권유로 참여하였으며, 권중택과는 안동공립보통학교 동문이자 안동군청에서 임시 고용인으로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다. 6월 4일 동화당인쇄소(東和堂印刷所)에서 권중택과 조직 확대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논의 결과 인쇄직공조합의 조직 책임을 맡았고, 권중택은 양화직공조합(洋靴職工組合)을 책임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를 지도할 기관으로 적색노동조합(赤色勞動組合)을 결성하였다. 또한, 이필 등과 함께 여성 독립운동가 양성 필요성에 공감하고 여자부를 신설하여 한인 여성들을 독립운동에 참여시키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933년 5월경 일본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항일 활동을 지속해서 전개하지 못하였다. 1933년 7월경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후 예심을 거쳐 정식 재판에 회부되었다. 1934년 7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미결구류일수 300일 본형산입), 집행유예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고의 후유증으로 1935년 4월 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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