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순
吳贊淳1894. 10. 2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정단
- · 정의부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영성주재소 습격
- · 인산주재소 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1894년 10월 25일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관흥면(館興面) 채가동(彩佳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오상호(吳尙鎬)·오상호(吳尙浩)를 사용하였다. 1922년 서간도(西間島) 창바이현(長白縣)으로 가서 광정단(光正團)에 참여하였다. 광정단은 1922년 4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이 통합해 성립된 독립군단이었다. 윤덕보(尹德甫)를 단장으로 한 광정단의 주 근거지는 창바이현 이었으나 인근의 푸쑹(撫松)·린쟝현(臨江縣) 등에도 독립군을 분산 배치하여 활발한 항일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광정단 본부는 최고 영도기관인 총부 밑에 재무·군사·서무·경호·의사·권업·문화·통신·회계·위생부 등의 부서가 편성하였다. 이때 통신부에 속해 통신사무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고, 경호부 소속의 경호대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독립군단의 통신사무란 본부의 지시 사항을 여러 지역에 분산 배치되어 있는 지단(支團) 또는 파견대에 전달하거나, 유격대가 출격하면 길을 안내해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또 경호대원은 일제 군경의 기습 공격이나 밀정의 침투를 막는 역할이 임무였다.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유격대 또는 모연대의 일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활동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광정단은 1924년 11월 24일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잡륜자치회(卡倫自治會)·고본계(固本契)·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 등 7개 단체와 통합해 정의부(正義府)를 탄생시켰다. 정의부는 하얼빈–애무(額穆)-북간도를 동서 일직선으로 선을 그어 그 이남 만주를 관할 지역으로 하였다. 그리고 관할 지역내에 거주하는 이주 한인의 생계를 도모하기 위한 자치 활동을 펼치는 한편, 의용군을 편성해 항일 독립전쟁을 수행하였다. 자치 활동을 위해서는 행정기관인 중앙행정위원회, 입법기관인 중앙의회, 사법기관인 중앙심판원을 설치해, 3권 분립에 입각해 한인들의 삶을 이끌고 질서를 유지시켰다. 그리고 지청천(池靑天)을 사령관으로 한 의용군은 그 체제가 몇 번 바뀌기는 하지만, 성립 초기에는 5개 중대와 헌병대가 설치되어 총 410여 명의 독립군을 보유하였다. 광정단원이었기에 자연히 정의부에 소속되었고, 의용군의 독립군이 되었다. 192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한국에 이어 만주를 손안에 넣고자 한 일제가 이 지역을 집중 공략하면서 한국독립군이 활동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만주에 있는 한국독립군과 ‘배일한인(排日韓人)’을 밝혀내 소멸시키고자 일제는 중국 측을 억압해 1925년 6월 소위 ‘삼시협정(三矢協定)’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은 중국군경이 한국 독립운동자를 체포해 일제 측에 넘긴다는 지극히 불평등한 내용이었었다. 이로 인해 한국독립군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 무력의 탄압을 동시에 받아야 했고 정의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1925년 정의부의 국내진입대 일원이 되어 함남 삼수군의 영성주재소(嶺城駐在所)를 습격해 큰 피해를 입히고 돌아왔다. 1926년 (음)8월 6일, 또 다시 유격대의 일원이 되어 함경남도 삼수군 호인면(好仁面)에 있는 인산주재소(仁山駐在所)를 습격하였다. 주재소 내 일제 경찰을 처단하고 무기를 탈취하기 위한 이 전투에서 유격대는 한인 순사 김원봉(金元鳳)을 사살하였다. 무기 탈취까지 목적을 이룬 유격대는 무사히 본부로 귀대하였다. 1920년대 후반 재만 독립운동계는 민족유일당운동을 벌였다. 만주의 한국독립운동계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움직임이었다. 그 결과 전만주의 독립운동계가 하나로 통합되지는 못했으나 남만주는 국민부(國民府)와 그 소속의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 북만주는 혁신의회(革新議會)와 그 소속의 한국독립당 및 한국독립군이 탄생하였다. 정의부 구성원 대부분은 국민부 소속원이 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국민부에 소속되어 유격활동을 위해 1929년 12월 황해도 맹산군(盟山郡)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동료 대원들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던 중 맹산군 옥천면(玉泉面)에서 맹산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대를 만나 붙잡혔다. 1930년 12월 2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총포화약류취체규칙 위반, 살인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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