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林河
吳河1887. 2. 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 · 흥사단
- · 레드우드비행학교
- · 한인비행사양성소
- · 캘리포니아주 대한인공동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87년 2월 2일 평안남도 평양군(平壤郡) 융흥면(隆興面)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평남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同江面) 선교리(船橋里)이다. 본명은 오종현(吳宗鉉)이었으나 미국에 온 뒤 임하(林河)로 개명하였다. 이명으로 임성일(林成日)·오임하(吳臨夏·吳林夏)를 사용하였다. 호는 해봉(海峯)이다. 아버지는 오봉서(吳鳳瑞)이고 어머니는 김씨이며, 1914년 박순도(朴順道)와 결혼하여 장녀 애길(愛吉)과 아들 명길(命吉)·신길(新吉)을 두었다. 1894년부터 1900년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1902년까지 양복점 점원으로 일하였다. 1902년부터 1906년까지 평양 사숭학교(四崇學校)를 다녔으며, 1902년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1906년부터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를 다니던 중, 1908년 대한협회(大韓協會) 평양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 대성학교를 졸업한 뒤 북간도와 상하이(上海) 등지를 여행하였고, 1913년 상하이에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913년 9월 20일 곽임대(郭林大)·임초(林超) 등 6명과 몽골리아 선편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고, 1914년까지 여관고용인으로 일하였다. 1914년 1월 10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북미지방총회(北美地方總會) 산하 로스앤젤레스지방회에 가입하였고, 3월 19일에는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였다. 1914년 12월 열린 제1회 흥사단 남방대회(南方大會)에서 대회 운동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병식체조와 각종 경기 등을 주관하였다. 1915년 4월 흥사단 이재원(理財員) 강영대(姜永大)에게 예연금(例捐金) 200달러와 흥사단 단보비(團報費) 20달러를 납부하였다. 또한 단우 임초의 치료비로 100달러를 쾌척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중부 캘리포니아주 다뉴바지방회의 국치기념식에 참석하여 조식과 함께 창가를 불렀다. 1917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소학교를 졸업하였다. 9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서 은행채를 갚기 위해 모집한 제4회 발기자에 참여했다. 1918년 8월 북 캘리포니아주 맥스웰·딜라노·윌로우스 부근 벼농장에서 일하는 동포들과 김종림의 농장에 모여 거행한 국치기념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한편, 국치기념 적립금 1달러를 기부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맥스웰지방회 회장 임준기(林俊基)와 임시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경축식을 개최하고 연설하였다. 8월 말 이용선(李用善)과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비행학교(Redwood Aviation School)에 입학하여 비행훈련을 받았다. 1920년 5월 25일 이용선과 레드우드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2월 노백린 등이 윌로우스(Willows)에 설립한 한인비행사양성소에 입학하여 비행사 겸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7월 7일 우병옥(禹炳玉)·이용선·이초와 함께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한인비행사양성소는 1921년 3월 이후 폐쇄되었다. 1921년 3월 다뉴바지방회에서 3·1절 기념 운동회를 주관하였다. 1926년 3월 다뉴바·리들리(Reedley)의 3·1절 기념식의 주석으로 기념식을 이끌었다. 같은 해 7월 다뉴바지방회의 국어학교가 점차 쇠퇴하자, 찬조원이 되어 국어학교를 부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1928년 3월 3·1절 기념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하였다. 1929년 1월 다뉴바 고려학원을 위해 기본금 30달러를 기부하였고, 7월 로스앤젤레스 삼일국어학교 기숙사를 위해 10달러를 기부하였다. 1930년 3월 중부 캘리포니아주의 다뉴바·리들리·팔리어 한인들이 중가주 대한인공동회를 조직할 때, 서기로 선임되었다. 1934년 1월 멕시코의 메리다(Merida)로 가서 2월 13일 이마리아와 결혼한 뒤, 5월 5일 새크라멘토로 돌아왔다. 1936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제27회 대의회가 개최될 때, 메리다지방 대의원 이종오의 대리인으로 참석하여 의안수정위원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8월 17일 부인·어린 아기와 멕시코로 갔다. 1938년 1~2월 당시 멕시코 티와나에 살면서 5~6개월 동안 폐렴으로 병고를 치렀고, 궁핍한 생활로 어려움을 겪었다. 1915년부터 1937년까지 국민의무금으로 74달러 50센트, 의연금으로 65달러, 인구세로 12달러, 독립금으로 100달러, 구제금으로 15달러 등 수십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였다. 가옥채 보상금, 국치일 기념 적립금, 원동사변임시위원회 지원금, 삼일절기념금 등도 기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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