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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基征

基征

188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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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廉基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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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진잠(鎭岑)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진잠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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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염기정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충청남도 진잠군(鎭岑郡) 하남면(下南面) 진대리(陳代里, 현 대전광역시 유성구·서구 일대)에서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5세로,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염기준(廉基俊), 염기준(廉己俊) 등을 사용하였다. 1907년 (음)8월부터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제는 고의로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전쟁의 전개에 따라 강제로 한국과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즉,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군사권뿐만 아니라, 외교권, 재정권까지 침탈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였으므로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이어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더불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하는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의병 봉기하였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7년 (음)8월 스스로 호남호서창의대장(湖南湖西倡義大將)이라고 칭하고 47명의 의병들을 인솔하여 충청남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가, 삼남창의소도원수(三南倡義所都元帥) 김동신(金東臣)의 휘하로 들어갔다. 김동신 의병장은 1907년 한국 군대 강제 해산된 직후 민종식(閔宗植)과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 2월까지 대규모 의병들을 인솔해 전북 장수군(長水郡)·무주군(茂朱郡)·순창군(淳昌郡)·전남 구례군(求禮郡)·충남 회덕군(懷德郡, 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동 일대)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던 의병장이었다. 김동신 의병부대의 중군장으로서 김동신 의병장을 따라 충남, 충북, 그리고 경남, 경북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6월 김동신 의병장이 대전군(大田郡, 현 대전광역시)에서 붙잡히자 다른 의병들과 함께 전남과 전북 일대로 흩어졌다. 1909년 4월 8일 부하 의병들을 데리고 귀향하여 진잠군 상남면(上南面) 신대리(新垈里, 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대동)에서 잠복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09년 4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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