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홍
吳德弘1885. 5. 4 ~ 1909. 8.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전남 나주)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7) 1885년 5월 4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병수(吳丙洙)를 사용하였다. 1909년 나주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킴에 따라 이를 계기로 의병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호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전남 의병은 크게 기삼연(奇參衍) 부대, 심남일(沈南一) 부대, 안규홍(安圭洪) 부대의 세 구역으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전북은 김동신(金東臣)·문태수(文泰洙)·이석용(李錫庸) 부대가 대표적이었다. 일본군은 이러한 의병투쟁에 대해 러일전쟁 이후 전력의 정비를 방해하고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저지할 뿐 아니라, 제국 군대로서의 위신에 손상이 가해진다고 판단하였다. 그에 따라 실시한 이른바, ‘남한대토벌 작전’에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10월 5일까지 1,055명을 포로로 잡아들이고, 37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초토화전술을 기본으로 삼아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일방적인 탄압을 집중적, 반복적으로 광범위하게 실시한 결과였다. 일제가 남긴 이른바 『조선폭도토벌지』에는 1906년 3월부터 1911년 6월까지 의병부대 피해로 1만 7,779명 사망, 376명 부상, 2,139명의 포로가 발생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전남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일본군 임시한국파견대사령부(臨時韓國派遣隊司令部)가 1909년 9월 1일부터 같은 해 10월 30일까지 대토벌작전 결과 수집, 정리한 문서에 의하면, 1909년 9월 23일 당시 20명의 의병을 지휘하며 전남 나주군 아계면(芽界面) 일동(日洞, 현 나주시 문평면 일대)에서 일본군에 저항하다 붙잡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