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응삼
吳應三1864 ~ 1909. 3.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강승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강승지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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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초천면(草川面) 호산리(虎山里, 현 보성군 벌교읍 호동리)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월일, 성장 과정과 집안 내력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 1909년 재판 당시 45세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국권 침탈이 강화되는 가운데,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되었다. 또한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인해, 1907년 7월에 고종이 강제 퇴위되었으며, 1907년 8월 1일에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침략에 대해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강승지(姜承旨)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강승지의 지휘 하에 이기춘(李己春)과 함께 1908년 10월 29일에 순천서(順天署) 흥양주재소(興陽駐在所)에 부임하였던 일본인 순사 사와하타 진키치(澤畑甚吉)를 처단하였다. 1908년 12월 20일에 이기춘 및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흥양군 동면(東面) 관덕리(觀德里, 현 고흥군 두원면 관덕리)에 거주하는 송태익(宋泰益) 집으로 들어가 군자금과 군수품을 받았다. 1909년 1월 12일에는 다시 송태익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을 받았으나 이후 흥양 주재순사에 의해 붙잡혔다. 순천경찰서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신문을 받은 후, 재판에 회부되어 1909년 3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로 가는 도중 이기춘과 함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 장내리(墻內里, 현 순천시 옥천동) 산로(山路)에서 감시 순사의 빈틈을 엿보고 포승(捕繩)을 끊고 도주하였다. 호송하던 순사는 이들을 쫓아 다시 붙잡았다. 이기춘과 함께 일제 순사에게 계속하여 저항하다가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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