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응천
吳應天미상 ~ 1909. 7.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대극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대극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출생연월일과 성장 과정,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전남 영광군(靈光郡) 출신의 이대극(李大克)이 전남 영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여 의병부대의 총장(銃將)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전라도에서도 소규모 단위의 의병부대가 형성되어 때론 연합 전선을 구축하거나 때론 독립적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해 갔다. 이대극 의병부대는 1907년 기삼연(奇參衍)을 맹주로 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 참여하여 도포장(都砲將) 겸 군기감(軍器監)으로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11일에는 무장 고산(高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습격하여 타격을 주었으며, 이어 불갑산(佛甲山) 연실봉(蓮實峰)에 진지를 구축하여 일본군의 공격에 대응하였다. 이처럼 이대극 의병부대는 전남 영광·고창(高敞)·무장(茂長, 현 고창군 무장면) 등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1909년 4월 3일 이대극이 사망하자 의병부대가 크게 위축되었다. 이때 흔들리던 의병부대를 재정비하고 4·50명의 의병을 이끌면서 독자적으로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주로 무장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1909년 7월 26일 무장군(茂長郡) 탁곡면(托谷面, 현 고창군 석곡면 일대) 지인의 집에 잠복해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자신의 잠복 정보를 입수하여 파견된 일본군 나주수비대 제5중대의 습격을 받고 총격전을 벌였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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