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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

吳壯煥

1863. 11. 12 ~ 19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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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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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기삼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기삼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3년 11월 12일에 전북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남산리(南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경환(京煥)·길한(吉煥)이다. 일제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 정치가 시행되었다. 또한 1907년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한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인해 고종이 강제 퇴위 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분노하여 전국적인 의병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삼연(奇參衍)·전해산(全海山)·이대국(李大國)·김태봉(金泰鳳) 등과 같이 의병을 모집하고, 1907년 10월부터 고창(高敞)·장성(長城)·영광(靈光)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기삼연은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영광 수록산(隨錄山) 석수암(石水庵)에서 의병을 모아 훈련시킨 후 의병부대를 편성하는 연합 의병 지휘부인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설치하고 격문을 돌리자 이에 입진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1907년 담양군(潭陽郡) 탑정전투에서 교전 중에 부상을 입어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 와중에 1907년 7월 25일에 일본군 10명에게 붙잡혔다. 고문에 시달린 후 1909년 7월 26일 사망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도 1908년 2월 기삼연과 함께했던 김용구 의병부대가 패전한 이후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었다. 이러한 기삼연 의병부대에서 의병도통(義兵都統)으로 활약하였으며, 1907년 10월부터 1909년 6월 사이에 의병을 지휘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여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9년 6월 야간에 귀가하여 집안의 가사를 정리하는 도중에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저항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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