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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규하

禹圭夏

미상 ~ 189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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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우규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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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전기의병(호좌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생년월일, 출신지역 등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일본의 만행에 분개하여 1895년에 일어난 을미의병 시기부터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거느렸던 호좌의병부대에서 전군장이었던 홍대석(洪大錫) 의병부대의 부대원이 되어 포수로 활동하였다. 유인석 부대가 1896년 3월 8일에 충주성(忠州城) 전투를 마치고 제천(堤川) 지역에 들어와 제천을 수비하고자 할 때 홍대석과 함께 청풍(淸風)의 북창진(北滄津, 현 제천시 청풍면 북진리)을 방어하는 수비전력이 되었다. 3월 14일에는 부대원과의 논의 끝에 수안보(水安堡) 및 가흥(佳興, 현 충주시 중앙탑면)의 일본군 기지를 공략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유격장으로 이강년(李康秊)이 연합하게 되어 전력이 더욱 보강되었다. 3월 19일에는 의병대원들과 수안보 남산에 도착하여 일본군 기지를 전력으로 공습하였으나 일본군의 중요 거점이었기에 수비가 굳건하여 장악이 어려웠다. 결국 상황이 나빠져 서창(西倉, 현 제천시 한수면 서창리)방면으로 퇴각하였다. 3월 26일에는 새재(鳥嶺)에 도착하여 일본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군기고를 격파하여 조총, 화약, 탄환 등 군수품 92점을 챙기고 다시 동원(東院)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일본군이 야습을 가하였고, 이에 덕주산성(德周山城, 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남문 근처로 병력을 옮겼다. 1896년 4월에는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수안보를 탈환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결국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청풍의 서창에서 수안보로 가는 박달재(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에서 부대원 11명과 함께 전투 중 사망하였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선봉 김운선(金雲仙)이 신당(新塘)에서 일본군을 만나 시신이 난자당하고 불태워져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버렸다. 같은 날 겨우 부대 근거지로 운반되었다. 이후 추치경(秋致景)·김용이(金用伊)·김재관(金在觀)·우재봉(禹在鳳) 등 6명과 함께 ‘7의사 무덤’이라고 불리는 남당촌에 묘소가 마련되었다. 유인석은 그 죽음을 슬퍼하고 의리를 기리고자 『창의견문록(倡義見聞錄)』에 실려 있는 것처럼 제문을 지었다. 또한 7의사의 자손들도 4촌계를 만들어 애국 의지를 계승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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