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승환
魏承煥188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홍태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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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함경남도 함흥(咸興) 출신이다. 일제 측 판결자료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9세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고, 당시 거주지는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남서면(南西面) 사가리(四街里)였다. 1908년 2월부터 홍태영(洪泰英)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삼아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한 뒤 대한제국 군대 해산까지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 침탈행위에 분노한 애국지사들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 같은 시대 분위기에서 1908년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8년 2월부터 1909년 10월까지 홍태영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황해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고, 서울과 김포군 등지에까지 진출하여 군자금품 모집하는 등 활약을 하였다. 홍태영의 지휘에 따라 다른 동료 의병들과 함께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일대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하였다. 교전 도중 오른손을 상실하여 불구가 되었지만 계속하여 무장투쟁을 지속하였다. 이와 같은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에 일본군에게 붙잡혔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09년 11월 9일 경성지방재판소 인천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 절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11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어 징역 2년으로 감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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