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홍
兪基弘186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윤동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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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평안남도 영유군(永柔郡) 수산면(水山面) 가원시장리(현 평원군 평원면 일대) 출신이다. 의병활동을 할 당시 거주지는 함경남도 문천군(文川郡) 구산사(龜山社) 섬호리(蟾湖里, 현 강원도 천내군 당치리)이다. 일제 측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40세로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농업이었다. 1907년 이후 해산 군인 출신인 윤동섭(尹東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함남 문천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함경남도 각지에서도 독립된 의병부대들이 형성되어 일본군과의 전투가 전개되었다. 윤동섭은 대한제국 개성진위대(開城鎭衛隊) 병사 출신으로 1908년 4월 10일 의병을 일으켜 약 140~150여 명의 의병부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함남 문천·고원(高原) 등지에서 순사주재소나 관공서를 습격하여 문서를 소각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와 전투를 벌여 나갔다. 이들은 주로 소규모 단위를 이루어서 산간벽지를 다니면서 유격전을 전개해 갔으며, 그 과정에서 주로 군자금과 군수품을 조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수십 명의 동료들과 함께 1908년 4월 15일에서 18일 사이에는 함남 문천군 명효사(明孝社) 율동(栗洞, 현 문천시 덕흥리), 동군 군내사(郡內社) 직동(直洞, 현 문천시 부방리), 동군 초한사(草閑社) 능전리(陵前里, 현 문천시 신송리) 등지의 각 촌락을 돌아다니면서 율동 주화준(朱華濬) 집에서 33원 50전, 직동 이용은(李容殷)에게서 10원, 능전리 박명근(朴明根)에게 2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함남 문천군 사리올에서는 일본군 수송대를 습격하여 쌀 2부대와 소고기 통조림 1상자를 확보하였다. 고원군 파막에서는 소 7마리를, 함남 영흥군(永興郡) 차일(遮日) 장거리와 용당골에서 존위(尊位)에게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어서 평안남도 양덕군(陽德郡) 온천장(溫泉場)에서 이장에게서 엽전 2백 50냥을 모집하였으며, 함남 영흥군 모리미에서 일진회원 집 2호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이처럼 동료 수십 명과 함께 함남 문천군 일대에서 군수품 및 군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09년 8월 23일 함흥지방재판소 원산지부에서 이른바 폭동·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됐으나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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