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德三
德三1878 ~ 1910. 3.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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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충청북도 영춘군(永春郡) 가야면(佳野面) 여수리(麗水里, 현 단양군 가곡면 여천리) 출신이다. 일제 측 판결문에 의하면, 1909년 당시 32세로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성씨가 다른 유덕삼(劉德三)이었고, 본관은 충청북도 영춘(永春)이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에 이르러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더불어 강제적으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을 장악하였고 조약 체결 이후에는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지화 정책에 분노한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시기인 1907년 8월 충청북도에서 의병장으로서 수백 명의 의병들을 데리고 청주군(淸州郡, 현 청주시)·보은군(報恩郡)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11월부터 홍치경(洪致敬)·성문조(成文祚)·권이수(權伊水) 등과 함께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11월 20일 경상북도 순흥군(順興郡) 골내리(骨內里, 현 영주시 순흥면 부근)에서 엽전 10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같은 달 하순 충청북도 영춘군 대곡면(大谷面) 해일리(海日里, 현 단양군 가곡면 부근)에 거주하는 일진회원인 우성문(禹成文)을 처단하였다. 1909년 (음)2월 10일 순흥군 옥대리(玉垈里, 현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에서 엽전 70냥과 무명 1필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13일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의 일제순사와 교전하여 순사 두 명을 처단하였다. 그러다가 그해 10월 31일 일본군에게 붙잡혔고 같은 해 11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유죄를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살인 및 강도죄로 교수형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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