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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오

兪致五

1908. 9. 6 ~ 1996.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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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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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생운동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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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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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성진회
  • · 광주농업학교 독서회
  • · 전남노농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8년 9월 6일 한성부(漢城府, 현 서울특별시) 신당동(新堂洞)에서 태어났다. 1929년 3월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東京) 사립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률과에 입학하였다. 1926년 광주농업학교 재학 당시 김인수(金仁守)·김시성(金時成)·이동선(李東宣)·김복만(金福萬)·김재용(金在龍) 등과 함께 성진회(醒進會)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성진회는 1926년 11월 광주군(光州郡) 광주읍(光州邑) 부동정(不動町) 최규창(崔圭昌)의 하숙집에서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박인생(朴仁生) 등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 중심이 되어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단체이다. 성진회 회원들은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 독립을 위해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투쟁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성진회는 1927년 3월경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성진회 출신 학생들은 광주 각 학교에서 독서회 조직하여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7년 6~9월 독서회 회원들은 독서회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해 소비조합 설립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였다. 최규창(崔圭昌)·김몽길(金夢吉)·임종근(林鍾根)·김기주(金基柱)·장석천(張錫天) 등과 함께 소비조합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7년 11월 광주군 광주면 누문리(樓門里) 김태호(金台鎬) 집에서 김복만(金福萬)·김재룡(金在龍)·유상걸(柳上杰)·정동수(鄭東秀)·문승수(文升洙) 등과 만나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학생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28년 2월 11일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 지용수(池龍洙) 집에서 임주홍(林周弘)·최규창·김광용(金匡溶)·문승수(文升洙)·정종석(鄭鍾奭) 등과 만나 재학 중에는 재학생들에게,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노동자·농민·학생에게 사회주의를 보급하여 한국 독립에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에 관해 협의하였다. 니혼대학에 유학중이던 1930년 상반기 도쿄에서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었다. 광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광주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7월 26일 예심이 종결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00일 본형 산입)으로 감형받았다.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8월 28일 풀려났다. 광주군 광주읍 부동정에서 1931년 12월 14일 풀려난 임종근과 만나 향후 함께 활동하기로 하였다. 충청남도 강경(江景)에서 활동하다가 예전 독서회 동지 나승규(羅承奎)를 만나기 위해 전라남도 장성(長城)으로 이동하였다. 1932년 메이데이 예비검속으로 장성경찰서에 붙잡혀 고초를 겪고 5월 4일 풀려났다. 전라남도 여수(麗水)로 이동하여 미곡상으로 위장하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1932년 7월 초 광주군 광주읍으로 이동하여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에서 활동하던 김부득(金富得)을 만났다. 8월 17일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덕남리(德南里) 금당산(金堂山)에서 김부득·임종근과 만나 일제의 탄압으로 와해된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 재조직에 관해 협의하였다. 1932년 8월 27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면 사격장 부근에서 허재환(許在煥)·김부득·박대규(朴大圭)와 만나 일제 당국이 해산한 옥과노동회(玉果勞動會) 처리에 관해 협의하였다. 협의 결과 옥과노동회를 해산한 후 회원들을 규합하여 향후 적색노동조합 혹은 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32년 8월 말부터 9월까지 강석원(姜錫元)·오쾌일(吳快一)·유찬옥(柳贊玉)·최종수(崔宗秀)·이영범(李永範) 등을 만나 노동자·농민을 규합하여 활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종근과 함께 음악회·강연회를 개최하고 자금을 조달하여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있던 전남노동협의회 관련자들에게 사식과 도서를 차입하였다. 또한 광주의 빈민 거주 지역과 각 공장에서 동지를 규합하였다. 1932년 9월 25일 광주제2공립보통학교 부근에서 김부득·임종근을 만나 임종근과 함께 대구에서 활동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10월 1일 광주제2공립보통학교 부근에서 김부득과 만나 각자 광주와 대구에서 동지들을 규합한 후 12월 2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영산면(榮山面) 영산교에서 만나 전남노농협의회를 재건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1932년 11월 대구에서 임종근·장매성(張梅性)과 함께 전남경찰부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1934년 1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45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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