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룡
尹三龍1925. 12. 5 ~ 1946. 6.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구공립상업학교 태극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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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5년 12월 5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남산동(南山洞, 현 대구광역시 남산동)에서 아버지 윤길수(尹吉秀)과 어머니 선이(先伊)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 이명으로 윤삼음(尹三音)을 썼다. 일제의 강요로 이본삼길(伊本三吉)이라고 고쳤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다. 1942년 5월 대구덕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대구공립직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하였다. 대구공립직업학교 기계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43년 4월 이상호(李相虎)의 권유를 받고 항일학생결사 태극단(太極團)(일명 T.K.D)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대구공립상업학교 재학생인 이상호·서상교(徐尙敎)·김상길(金相吉)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비밀결사로서,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무력 항쟁을 통해 조국의 독립 쟁취를 계획하였다. 원래 1942년 5월경 이상호 혼자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연구·구상한 조직이었는데, 6월경 최두환(崔斗煥)의 소개로 이상호를 알게 된 후 수 차례 회합하여 한국의 독립에 대하여 토의하였다. 태극단은 1943년 4월 이후 서상교·김상길의 적극적인 동참과 지지를 얻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우선 이상호가 작성한 태극단 대강(大綱)을 검토한 후 조직체계를 확정하였다. 단장·육성부(育成府)·간부회의로 구성하였고, 육성부 밑에 관방국(官房局)·체육국(體育局)·과학국(科學局)을 설치하였으며, 각 국 밑에는 군사부·씨름부·항공부 등을 두기로 하였다. 이들이 동지를 규합하면서 조직을 확대할 때 태극단의 취지에 공감하여 가입하였다. 같은 해 5월 이상호의 집에서 회합할 때 참여하여 간부로 추천, 경기부장(競技部長)으로 활동하면서 단원들과 함께 동지 규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43년 5월 배신자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게 태극단의 조직과 활동이 탄로나 같은 해 5월 25일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대구경찰부 고등계 형사에게 붙잡혀 대구경찰서로 끌려갔다. 대구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약 5개월 동안 조사를 받고, 같은 해 10월 11일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었다. 1944년 1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3년형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초순경 동지 김상길 등과 함께 인천소년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출옥 후 모교에 복학하였으나 고문과 옥고의 후유증으로 1946년 6월 30일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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