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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才君

才君

1884 ~ 1918.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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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廉才君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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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흥(慶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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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8) 함경북도 경흥군(慶興郡) 웅기면(雄基面) 영저(嶺底, 현 함경북도 나선시 선봉읍)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8년 당시 35세인 것으로 보아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일제 밀정 처단 당시 중국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춘경사(春耕社) 나자구(羅子溝)에 거주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후에도 동료들과 함께 “비밀사상을 품고 국권회복을 꿈꾸고” 있었다. 이때 측량 활동을 통한 정탐을 위해 일본군 육군참모본부가 육지측량수 야마나카 류이치(山中唯一)를 중국인으로 위장, 파견하여 한인과 중국인 각각 1인을 대동하고 정보 활동을 하고 있음을 현지에서 탐지하게 되었다. 야마나카 일행의 목적은 ‘배일(排日)’ 한국인과 인근에 설립된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의 정황을 탐지하는 것이었다. 1916년 4월 26일 이들 일행이 자신의 집에 투숙하는 상황에서 야마나카가 일본인임을 눈치 채고 극진히 대접하면서 이들의 목적이 무관학교의 정탐 등에 있음을 파악하게 되자, 편의를 보아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염재영(廉才英)의 집으로 가서 염재영·김광사(金光思) 등과 야마나카 일행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김광사가 중국 관립학교의 제복을 입고 중국 관리로 위장하고 일행을 이끌고 야마나카 일행을 습격하여 일행의 짐을 검사한다고 하면서 제도용지(製圖用紙)와 제작된 지도를 적발하고, 중국 경내에서 불법 측량을 진행하였으니 중국 관사로 압송한다고 이들을 결박한 후 인근 언덕으로 연행하여 처단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국내로 끌려와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조사를 당하며 고초를 겪었다.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사형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1918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1918년 7월 9일 서대문감옥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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