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환
吳斗煥1881 ~ 1909. 7.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경북 영덕
- · 청송)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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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7)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대서면(大西面) 궁기동(宮基洞, 현 달산면 흥기리) 출신이다. 주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9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그 외에 어린시절이나 성장 과정 등 인적 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또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일련의 국권침탈에 분하는 애국지사들은 뺏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 봉기하였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하에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수십 명의 의병들을 지휘하여 의병 활동에 투신하였다. 1909년 (음)1월 김성일(金聖一)·최재팔(崔在八)·어호준(魚浩俊)·김안농(金安農)·이칠령(李七令)·김원조(金元祚) 등 6명의 의병들을 데리고 영덕군 외남면(外南面) 회동(晦洞, 현 남정면 회리)에서 현금 30문 등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2월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고적동(古赤洞, 현 월매리)에서 엽전 137냥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집과 일본군 및 친일파 습격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에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09년 4월 2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상인(强盜傷人)·방화죄로 교형(絞刑)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1일에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결국 같은 해 7월 23일에 교형을 받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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