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식
吳寅植1896. 9. 9 ~ 1938. 6.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96년 9월 9일 제주도 대정군(大靜郡) 좌면(左面) 하원리(河源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군위(軍威)이며, 이명으로는 오병길(吳丙吉)을 사용하였다. 대정군 유향소 별감을 지낸 부친 오영화(吳永花)와 모친 강갑생(姜甲生)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술국치 이후 제주도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탄압하는 부당한 현실을 겪으면서 일제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게 되었다. 1918년 9월, 법정사 주지 김연일(金蓮日)이 군중 앞으로 나와 “왜놈이 조선을 병합 후에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있다. 불원 불무황제가 출연하여 국권을 회복하게 될 것이니 우선 제일로 제주도에 사는 일본인 관리를 죽이고 상인들을 도외로 구축하여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이에 그 자리에 모인 법정사 신도들은 김연일과 함께 대일항쟁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고, 1918년 10월 7일을 거사일로 삼아 비밀리에 이를 준비하였다. 1918년 10월 4일, 법정사 인근 마을에 격문을 보내어 거사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리며, 많은 주민들이 대일항쟁에 참여하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거사일인 10월 7일이 되자 서귀포지역 일제 기관을 습격함과 동시에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항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당시 하원리 좌면(左面) 도순리(道順里)에 거주하던 이종창(李宗昌) 등이 들어와 법정사 항일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대오에 합류할 것을 요청하자 이웃 주민 양봉(梁鳳)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때 주도자들이 나눠준 곤봉과 화승총을 가지고 군중과 함께 행진하며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전선과 전신주를 절단하였다. 중문에 도착해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주민 13명을 구출하였다. 또 행진 중에 마주친 일본인을 구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쟁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이를 피해 집으로 귀가하였다. 하지만 얼마 뒤 동지 65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어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벌금 30원을 받았다. 그러나 벌금 납부를 거부하여 3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어 복역하였다. 복역 중에 겪은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유치 기간이 끝난 뒤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38년 6월 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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