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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영

吳在英

186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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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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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온성(穩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온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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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신민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영와면(永瓦面) 구억동(九億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5년 당시 56세인 것으로 보아 1860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는 원서(元瑞), 호는 백포(白圃)이다. 아내 채씨(蔡氏)와 슬하에 동현(東鉉)·경현(敬鉉)·덕현(德鉉)·수현(壽鉉) 등 4형제를 두었다. 기독교 신자이며 만주에서는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경신향(敬信鄕), 금당촌(金塘村) 등에 거주하였다. 일제는 한학(漢學)을 10여 년 동안 수학했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였고 자산은 집과 소 2마리, 15일경(日耕)의 토지를 포함해 약 500엔(円) 정도였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1905년 3월 북간도공립소학교(北間島公立小學校) 부교원(副敎員)으로 임명되어 활동한 이래 1910년대에 훈춘현 지역에서 민족학교 세 곳을 설립하여 교육활동에 주력하였다. 또한 황병길(黃炳吉)·오병욱(吳丙默)·김병겸(金丙謙) 등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2년부터 중국 혼춘현 헤이딩즈(黑頂子)에서 순치동제회(脣齒同濟會)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일본 관헌으로부터 ‘배일선인(排日鮮人)’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았다. 1920년 10월 ‘경신참변’ 당시 헤이딩즈에서 민족학교를 경영하다 일본군에 붙잡히기도 하였다. 1922년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훈춘지단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신민단은 ‘조국의 완전독립’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주로 기독교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독립군 단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 관계를 맺고 러시아 추풍(秋風)과 훈춘현 및 간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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