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무영
尹務榮1890. 11. 18 ~ 1962. 4.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신니면 용원 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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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0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신니면(薪尼面) 신청리(新淸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한 윤무영(尹武英)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희갑(李喜甲)·손승억(孫承億)·이강호(李康滈)·윤주영(尹周榮·卓榮)·김은배(金殷培)·이강렴(李康濂)·은경옥(慇慶玉) 등과 함께 용원(龍院)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용원장터 만세운동은 이희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희갑은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인식하고, 향리에서도 만세운동에 동참해야겠다고 결의하였다. 3월 31일 평소 시국에 대해 의견을 교류하고 있던 지인들을 자신의 집으로 소집하였는데, 이강렴·은경옥·손승억·이강호·윤주영·김은배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날의 모임에서 신니면에서의 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의견을 교환하였다. 인근의 용원장터의 장날이 바로 이튿날인 4월 1일이었다. 만세운동의 준비에 시일이 촉박했지만, 장날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각자 만세시위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를 위해 역할을 분담하였다. 이희갑·이강렴 및 용명서당(龍明書當)의 학생 은경옥은 용원장터 만세운동의 대표자임을 자처하여 3인 공동의 명의로 주민들에게 독립의지를 고취시키는 내용의 독립선언서 7통을 작성하였고, 그 외의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의 내용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각각의 이름을 연서하였다. 연서된 독립선언서는 널리 배포하기 위해 손승억이 등사를 담당했고, 이강호·윤주영·김은배와 함께 만세시위 당일 사용할 태극기 제작을 담당하였다. 한참 태극기를 제작하던 중에 독립선언서 작성을 끝낸 은경옥·이희갑·이강렴이 와서 함께 태극기 19본을 제작하였다. 용원장터의 장날인 4월 1일 이희갑·이강렴·이강호 등과 함께 장터로 나갔다. 장터의 한복판에서 이희갑·이강렴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 뒤 동지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한 5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희갑·이강렴 등과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시위대를 형성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신니면에 주둔하고 있던 일제 헌병대가 출동하였다. 일제 헌병대는 시위대를 가로막고 무력으로 위협하여 강제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희갑·이강렴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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