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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방우

尹芳友

1896. 3. 2 ~ 1927.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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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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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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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96년 3월 2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내이동(內二洞, 현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 해 3월 13일 밀양면의 밀양시장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윤세주(尹世冑)와 윤치형(尹致衡)은 고종의 장례 행렬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탑골공원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서 낭독식과 만세운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두 사람은 정동찬(丁銅燦)·이장수(李章守)·김소지(金小池)·김병환(金餠煥) 등과 함께 성내(城內)의 장터에서 장날인 13일에 맞추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한 후,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 태세를 갖추면서, 밀양면 주민들의 만세운동 참가를 독려하였다. 이 때 만세운동 취지에 공감하여 참가를 결심하였다. 3월 13일 오후 1시경, 윤치형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이장수와 김소지 등이 앞서 큰 태극기를 들고 나팔을 불며 행진하자, 그 뒤를 따라가며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쳤다. 행렬이 시장을 행진하자 장터에 사람들이 합세하여 대열은 1,000명이 넘는 규모가 되었다. 밀양경찰서의 일제 경찰들은 일본군 헌병대에 지원 요청을 하였다. 부산에서 급파된 헌병들은 밀양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 만세를 외치는 군중들에게 총검을 휘둘러 해산시키고, 만세운동의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밀양경찰서로 압송된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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