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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관

尹炳寬

1892. 1. 19 ~ 1977.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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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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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울진(蔚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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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울진군 원남면 매화장터(4.11)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2년 1월 19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梅花里)에서 태어났다. 28세인 1919년 4월 11일 매화리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된 것은 근남면(近南面) 행곡리(杏谷里)에 사는 친구 장식(張植)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장식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참여하였으며, 독립선언서 1부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장식으로부터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받은 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장식이 갑자기 붙잡히면서 북면(北面) 고목리(古木里)에 사는 친구 전병겸(田炳謙)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5일 자택에서 윤강규(尹康逵, 尹鎬逵)·남광호(南光鎬)·최중모(崔重模)·최효대(崔孝大) 등과 울진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이튿날에 또 모여 거사일을 9월 11일에 매화리에서, 12일에는 울진면(蔚珍面), 13일에는 흥부장터에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매화리 장터에서 쓸 태극기에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라는 글씨를 쓰기로 하고, 이는 각자 마련토록 하면서 논의를 끝냈다. 4월 9일 매화리 최효대의 아버지 집 안에 있는 오두막에서 전병겸·최중모·윤상흥(尹相興)·윤정규(尹定逵) 등을 만나 만세운동에 쓸 대형 태극기를 제작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현수막도 만들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4월 11일 거사 당일 태극기를 지니고 매화리 장터로 향하였다. 오후 3시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가지고 온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어서 최효대가 원남면사무소 정문 앞으로 가서 현수막을 펼친 후 광목으로 만든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를 신호로 장터에 있던 주도 인물들과 함께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이들의 만세소리에 호응하여 장터에 모인 장꾼과 주민들도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 경찰은 즉시 현장에 헌병들을 보내 주도자들과 참여자들을 붙잡았다. 이때 붙잡혔고 이후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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