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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대

尹炳大

1887. 9. 5 ~ 1968.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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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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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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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합천군 묘산면(3.2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7년 9월 5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묘산면(妙山面) 팔심리(八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2일 합천군 묘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은 삼남지역에서 가장 많은 만세시위가 일어난 지역이자,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이루어진 곳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관련 자료에서 확인되는 만세시위만 군 전역에서 16차례 일어났고, 3월 23일 삼가(三嘉)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만세시위는 1만 3,000명의 대규모 군중이 참여하였다. 3월 18일 삼가시장 만세시위가 군내 최초의 만세운동이었고, 이후 3월 23일 삼가시장 시위까지 사실상 매일 만세시위가 전개된 것이다. 묘산면 만세시위도 이렇듯 치열하게 전개된 군내 시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군내 각 지역에서 매일처럼 일어나는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 묘산면의 윤씨 집성촌인 팔심리에서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명이 만세 거사를 계획하였다. 윤병석(尹炳奭)·윤병재(尹炳載)·윤병은(尹炳殷)·윤병교(尹炳喬)·윤형범(尹炯凡)등과 함께 비밀리에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우선 만세시위 날짜는 3월 24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제작 등 도구 준비와 만세시위에 동참할 군중을 모으기 위한 연락 등 역할 분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23일 거사일에 사용할 태극기를 윤형범의 집에서 비밀리에 제작하였는데, 윤병은·윤병석·윤병재 등과 함께 작업하였다. 태극기를 시위대의 앞에 세워 군중을 이끌고 지휘할 용도로 총 3개를 만들었다. 거사일인 3월 24일, 약 100여 명의 군중들이 뜻을 같이하여 모여들었다. 군중들의 선두에서 제작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일제 식민 지배의 상징인 묘산면사무소로 몰려갔다. 그리고 면사무소 앞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소식을 들은 군내 일본군 헌병과 주재소 경찰들이 출동하였고, 무자비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투석이나 기물 파손 등 어떤 물리력 행사도 없는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 군경은 총검으로 위협하며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도자 색출에 나섰다. 결국 일제 군경에게 거사를 계획한 윤병석·윤병은·윤병재 등과 함께 붙잡혔다. 모진 신문을 견뎌냈으나, 결국 석방되지 못하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1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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