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혁
尹秉赫1891. 12. 7 ~ 1939. 12.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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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1년 12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금마면 홍성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을 중심으로 1919년 4월 1일부터 가산리(佳山里)의 임시 연극공연장과 홍성시장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이틀 간 연속적으로 전개되었다. 마을에서 서당 훈장으로 생활하던 민영갑은 3월 1일 이후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세운동 상황을 인지하고, 평소 신뢰하고 있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협의하여 금마면의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4월 1일로 예정된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의 공연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여 이를 만세운동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연날인 4월 1일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관객으로 입장하여 연극공연장 안에서 만세운동의 기회를 엿보다가 오후 8시부터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들의 ‘대한독립만세’ 구호와 이에 동참하라는 호소에 공감한 30여 명의 주민들이 호응하기 시작하였다. 민영갑 등은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곧바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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