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達生
達生1886. 8. 26 ~ 1960. 1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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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86년 8월 26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道) 좌면(左面) 하원리(河源里)에서 아버지 이재백(李才伯)과 어머니 고씨(高氏) 사이에 태어났다. 법정사(法井寺) 항일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8년 9월 19일 법정사 정기 법회에 참석하여 김연일이 30여 명의 참여자들에게 “왜놈이 우리 조선을 병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합 후에도 관리는 물론 상인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있다. 곧 불무황제(佛務皇帝)가 나타나 국권을 회복하게 될 것이니 우선 제주도에 사는 일본인 관리를 죽이고 상인들을 제주도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라는 취지의 항일운동 목적을 설파하자 이에 동조하여 참여하였다. 같은 해 10월 4일 김연일은 법정사 주변의 좌우측 마을 이장들에게 “장정을 이끌고 10월 7일 오전 4시 하원리에 집합하라. 10월 8일에는 제주성을 습격하여 일본인을 추방하라”는 내용의 격문을 배포하면서 주민들을 모았다. 10월 5일 무력항쟁을 이끌 33명의 청장년으로 구성된 선동대가 결성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10월 7일 새벽 법정사에 집결한 선봉대 33명의 일원으로 선봉대장인 강창규(姜昌奎)·박주석(姜昌奎)·장임호(張林虎)와 함께 서귀포 방면으로 무력항쟁을 개시하였다. 중도에 서귀포 습격을 철회하고 중문리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전술을 변경하였다. 중문리(中文里)로 향하던 중 강정리(江汀里)와 도순리(道順里) 사이에 있는 대천(大川) 연변에서 서귀포와 제주성을 잇는 전선과 전주를 파괴하였다. 항쟁 대오는 중문리에 도착하여 경찰주재소장인 요시하라(吉原)를 비롯한 경찰 3명을 포박한 뒤 경찰주재소에 갇혀있던 13명을 풀어주었고, 주재소 건물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그러나 같은 날 10월 7일 오전 11시경 서귀포 경찰주재소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오자 항쟁 대오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날 38명이 체포되었고 법정사는 전소되었다. 법정사 항일운동 현장에서 붙잡혀 10월 21일에 구속되었고, 11월 11일에 기소되었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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