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일
尹東一1927. 11. 2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안동농림학교 항일비밀결사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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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927년 11월 20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청송면(靑松面) 월막동(月幕洞)에서 아버지 윤자기(尹滋琦)와 어머니 박근이(朴根伊, 寧海 朴氏) 사이에서 4남 3녀 가운데 첫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송강동행(松岡東幸)으로 고쳤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만세운동 지도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선전부 책임, 조선공산당재건건설준비위원회 조직부 책임 등의 활동을 전개했단 윤자영(尹滋瑛)이 큰아버지이다. 1941년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에 입학하였다. 안동농림학교 재학 중 동료 학생들과 한국역사 관련 서적을 탐독하였고, 학생들에게 애국가 가사와 태극기 모양을 가르치는 등 민족의식이 높았다. 1943년 3학년 재학 중 여름방학에 농촌실태조사라는 명목으로 강제 동원되어 풀베기와 관솔을 채취하는 도중 같은 학교 동기생 권영동(權寧東)·고제하(高濟夏), 후배 서정인(徐正寅) 등과 시국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연합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므로 일본군으로 끌려가 헛된 죽음을 당하기 전에 대책을 함께 마련하기로 결의하였다. 개학 후 본격적으로 서정인의 집과 낙동강 제방 등지에서 시국을 논의하며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찾아 나섰다. 같은 시기에 황병기(黃炳基)·이갑용(李甲龍)·장병하(張炳夏) 등 같은 학교 학생들도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 활동하였다. 비밀결사의 결성과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李相龍)의 손자이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향한 이대용(李大用)과 그의 친척인 이승태(李承台)를 접촉하면서 지도를 받았다. 동지를 규합하는 동안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가 한국인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수업 연한을 단축시켜 활동을 주도하는 많은 학생들이 졸업을 해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럴 경우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장봉기의 방안을 모색하고 투쟁조직을 결성하기로 결의한 끝에 1944년 10월에 항일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을 결성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여 후방을 교란하고, 연합군의 국내 상륙을 지원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독립운동의 방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조직 산하에 참모부·연락부·교화부·신풍부·특공부를 두었다. 김우현(金佑鉉)과 함께 무장봉기 준비를 위해 경찰서와 헌병대의 무기고를 조사하고 유사시에 공격을 담당하는 특공부를 맡아 활동하였다. 무장봉기를 위해 현필기(玄弼基) 등과 함께 낙동강 철교, 인도교 교각을 폭파하는 계획을 논의하고 훈련하였다. 활동 중이던 1944년 12월에 안동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1945년 1월 권영동·황병기·장인덕 등과 함께 회합하여 3월에 단원들이 졸업하면 거사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2월 17일에 봉기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거사는 일반인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제 패망과 봉기를 선동하는 벽보를 붙이고, 거사가 성공할 경우 인근 의성으로 진출하여 대구에서 출동하는 일본군 제24부대와 결전을 벌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동안 비밀리 교류하던 안동농림학교와 경주중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와 연합하여 무장투쟁을 실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를 추진하던 중 1945년 2월에 조선회복연구단의 단원들이 주고받은 편지 때문에 일부 단원이 체포되어 계획을 연기하였다. 다시 논의하여 일제의 육군 기념일인 3월 10일에 여러 행사로 인해 일본군의 경비가 허술할 것으로 보고 이날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먼저 체포된 단원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단원 명단을 포함한 조직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에 1945년 3월 5일 일본으로 도피하려다가 안동역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미결 상태에서 옥고를 겪다가 광복으로 기소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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