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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영

尹璣榮

1871. 2. 17 ~ 194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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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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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楊平)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1년 2월 17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강상면(江上面) 송학리(松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 해 4월 3일 양평군 고읍면(古邑面)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만세운동의 주도자인 최대현(崔大鉉)은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 이후 양주군(楊州郡) 진접면(榛接面) 금곡리(金谷里, 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릉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기부금을 모집하던 중, 3월 31일 거주지인 강하면(江下面)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참가하였다. 최대현은 이튿날인 4월 1일에도 양서면(楊西面) 도곡리(陶谷里)의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4월 2일 서울에서 온 학생들, 강하면 주민들과 논의하여 이튿날 궐기하기로 정하였다. 운동 당일인 4월 3일, 최대현은 강하면 주민을 이끌고 강상면과 강하면·양서면·고읍면을 순회하면서 “양평 읍내에서 서울 사람이 국가를 위해 순절하였으니 읍내로 조문하러 가자”고 하며 4개면에서 4,000여 명의 인원을 모집하였는데, 이 때 함께 참가하였다. 양평군민들의 행렬은 최대현의 인솔에 따라 만세를 외치며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고, 같은 마을에 사는 이보원(李輔元), 양서면 신우균(申祐均) 등과 함께 앞장서 태극기와 지휘봉을 들고 대열을 이끌었다. 한편 군중들이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은 길을 막고 행진을 방해하였다. 그러자 양평군민들은 일제 경찰의 명령에 불응하여 돌을 던지고 몸싸움을 벌이며 저항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무차별 사격을 가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참가자들을 연행하였는데, 이때 시위의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형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0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두 차례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치안을 혼란케 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보안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태(笞) 90(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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