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원
尹起遠1888. 7. 3 ~ 1921. 1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정산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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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8년 7월 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6일의 정산면(定山面) 정산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 유림들이 주도하였다. 홍범섭 등은 정산시장의 장날을 거사의 날짜로 잡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만세운동 준비를 하였다. 4월 5일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일제 헌병은 즉각 출동하여 만세시위 참여자들에게 즉시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정산시장에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분노하여 7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헌병분견소로 달려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은 해산을 강요하며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는데,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위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날은 황망함 속에 분노를 삭이면서 해산했으나,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헌병주재소로부터 권흥규의 시신을 인수하여 목면 안심리(安心里)로 향하는 운구에 참여하였다. 운구행렬의 선두에는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을 앞세웠다. 이미 사망 소식을 들은 연로 각 마을에서도 상여를 대고 또 곳곳에서 노제를 올리고 통곡하는 와중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점차 운구행렬은 만세시위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운구행렬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제는 정산과 공주(公州)의 헌병을 운구행렬을 향해 급파하였다. 공주에서 파견된 일제 헌병들의 발포로 운구과정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해산되었으나, 전날에 이어 권흥규의 조카 최윤안(崔胤安) 등이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다. 이후 일제 헌병에 붙잡혀서 청양헌병분견소에 투옥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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