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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鎭善

鎭善

1892. 2. 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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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劉鎭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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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2년 2월 8일 서울 청엽정(靑葉町)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 거주하였다. 이명은 유길용(劉吉龍)이다. 1926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소속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2월 5일 밤 정주군 서면(西面) 서호동(西湖洞) 석창륜(石昌倫)의 집 뒷산에서 석창륜으로부터 권총 한 자루를 건네받았다. 이것은 대한독립단의 단원이었던 백낙주(白樂疇)가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정주군 서면(西面)의 석씨(石氏) 문중 마을에 은신처를 마련하여 활동하다 만주로 귀환할 때 넘겨준 것이었다. 권총을 빌린 후 최준삼(崔俊三)·석창건(石昌乾)과 함께 서호동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최준삼과 석창건은 밖에서 망을 보게 한 후, 주병호 집으로 들어가 조선독립단 단원임을 밝히며 군자금 모집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주병호에게 2,000원을 요구하였으나 85원을 받았다. 이어 같은 마을의 이인규(李寅奎)로부터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6년 3월 15일 신의주지방법원 정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9년 2월 28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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