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윤억병

尹億炳

1910. 1. 10 ~ 1961. 10. 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억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칠곡(漆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동지구락부
  • · 성진회
  • · 재동경조선유학생연구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910년 1월 10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왜관면(倭館面)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이명으로 윤우병(尹宇炳)·윤경치(尹敬治)를 사용하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송강경치(松岡敬治)를 썼다. 부인은 최옥이(崔玉伊)이다. 1936년 6월 경북 칠곡에서 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하고 조선공산당 재건을 목표로 조직된 항일 비밀결사 동지구락부에 가입하였다. 동지구락부는 칠곡에서 사회운동을 펼친 후 서울·대구,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귀향한 최소복(崔小福)·정칠성(鄭七星)·이영석(李寧錫)이 주도하여 결성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박용칠(朴容七)·장재성(張載性) 등이 인민전선전술에 입각하여 결성한 재동경조선유학생연구회(在東京朝鮮留學生硏究會) 등과 연계되어 있었다. 동지구락부는 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빈농 중심으로 농민의 경제적 이해와 결합하여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제의 관제 농민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농촌진흥조합과 산하에서 운영하는 야학회를 활용하여 농민을 계몽하고 동지로 규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한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이 침략 전쟁이므로 일제의 패전으로 유도하기 위해 후방을 교란시키는 반전반제운동을 전개하고, 한국인의 생활을 사수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동지구락부에 가입한 후 이두석(李斗錫)·박형동(朴亨東)·이석(李錫) 등과 함께 산하에 설치된 성진회(惺進會)라는 독서회에서 활동하였다. 성진회 회원들과 함께 한국 역사, 어학, 문학, 사상 관련 서적을 읽고 민족의식을 키웠다. 또한 사회운동과 혁명이론을 함양하기 위해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회원들과 발표와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도 높여갔다. 성진회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향약(鄕約)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일종의 친목계처럼 위장하여 운영하였다. 회합 장소도 왜관 한 곳으로 하지 않고 대구의 여관, 고찰 탐방처럼 위장하기 위해 성주·합천·울산 등지의 사찰에서 모임을 가졌다. 1938년 2월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오랜 기간 미결수로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다. 1941년 3월 8일 예심을 마치고,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허종⋮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