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友順
友順미상 ~ 1922. 4
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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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 출생연월일 등 인적 사항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1922년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의 기관원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 의해 사망하였다. 상하이(上海)에서 발간된 『독립신문』 1922년 4월 15일자 기사에 의하면 “아(我) 대한광복군총영에서는 거월((去月)-1922년 3월-필자) 5일에 순국제열(殉國諸烈)을 위하여 비장한 추도식(追悼式)을 거행”했다고 보도했는데 그 명단에 성명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추도식이 거행된 순국자로는 각지 기관원(機關員) 15명, 광복군총영원(光復軍總營員) 5명, 벽파별영영원(碧波別營營員) 4명, 평남도영영원(平南道營營員) 3명, 철마별영(鐵馬別營營員) 2명이었는데, 이윤국(李允國)·이문하(李文河)·최윤옥(崔允玉) 등과 함께 각지 기관원에 포함되어 있었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7월경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남만주 지역에서 결성된 항일무장투쟁 단체로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정규군을 표방하면서 적극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2년 7월에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개편된 임원 구성을 보면 총영장은 오동진(吳東振), 군사부장 겸 참모부장 백남준(白南俊), 경리부장 이관린(李寬麟), 철마별영장 최시흥(崔時興), 벽파별영장 김영화(金永和) 등이었다. 또한 1920년 7월 1일에 발표된 약장(約章)에 따르면 한성(漢城) 총본부를 설치하고 각 도(道)와 군(郡)에는 도영과 군영을 설치하며, 유격활동을 벌일만한 요새지에는 별영을 설치한다고 하였다. 이후 광복군총영에서는 국내와 연결된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한 것으로 보이는 총영이 성립된 1920년에만 해도 일본 군경과의 교전이 78회, 습격한 주재소가 56개소, 소각한 면사무소 및 영림창이 20개소, 처단한 일제 경찰이 97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던 중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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