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섭
金公涉1895 ~ 1921. 12.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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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5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출신지는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이다. 이명은 김윤섭(金允涉)이다. 가족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별영(別營)의 대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광복군총영은 중국 펑톈성(奉天省) 관뎬현(寬甸縣)에서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이탁(李鐸)이 대한청년단연합회 간부들과 조직하였다. 광복군총영 가입 이후 국경 지역을 무대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0년에는 일본 군경과 교전을 78차례 벌였으며, 주재소 56개소를 습격하고, 면사무소 및 영림창(營林敞) 20개소를 소각하고, 일제 경찰 95명을 사살하였다. 같은 해 8월 미국 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평양·선천·신의주 등지에 특파대를 파견하였는데, 유격전을 벌여 미국 의원단들에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하였다. 1921년 6월 26일 오동진 등과 고향인 벽동을 습격하였다. 이때 무기와 『독립신문』 10장과 ‘권고문’ 1장 등을 휴대하였다고 한다. 국내 진격 작전을 통해 일제를 교란하면서도, 선전 활동으로 민중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921년 (음)12월 9일 석주자(石柱子)에 있는 노영준(盧永俊)의 집에 잠복하여 독립 투쟁을 준비하던 중, 일제 경찰이 노영준의 집을 둘러싸고 3면에서 습격하였다. 김공섭은 일제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고, 탄환 100발과 기타 서류 등 군수품을 압수당하였다. 시신은 일본 경찰이 가져가 버렸고, 총기는 중국 경찰이 빼앗아 갔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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