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안산과 광양, 두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광양 이야기 (15편)

궁기마을의 전우치 이야기
옛날 광양 태인리에는 궁터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에 도술로 이름난 전우치가 궁궐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전우치는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바로잡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어느 고을의 수령이 백성을 심하게 괴롭히자 전우치는 궁기마을에 궁을 짓고, 여러 고을에서 곡식을 모아 어려운 백성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전우치가 떠난 뒤 궁궐은 사라지고 궁터만 남았다고 하여 이곳을 궁터마을이라 불렀고, 지금의 궁기마을이라는 이름과 연결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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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마을 범바위 전설
고려 중엽, 호암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한 호랑이가 할머니 곁에 와서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마을에 도둑이 들면 크게 울어 알려 주었고,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가뭄이 들 때도 울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호랑이를 마을을 지켜 주는 존재처럼 여겼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호랑이는 며칠 동안 울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살던 집 뒤에는 호랑이 머리 모양의 큰 바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범바위라고 부르고 제를 올렸으며, 마을 이름도 호랑이 ‘호(虎)’와 바위 ‘암(岩)’을 써서 호암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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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의 의거
전쟁 때 광양 쪽으로 적군이 쳐들어오자 우리 군사들이 섬진강 앞까지 밀려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을 건널 배가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강에서 두꺼비 수백 마리가 나타나 마치 다리처럼 이어졌다고 합니다. 군사들은 그 두꺼비들을 밟고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뒤따라오던 적군이 강을 건너려 하자 두꺼비들이 모두 물속으로 들어갔고, 적군은 강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승에서는 두꺼비와 섬진강의 이름을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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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 창건전설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절을 세우려는 곳에는 큰 못이 있었고, 그 못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선국사가 활을 쏘자 청룡은 하늘로 올라갔지만 백룡은 바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룡도 화살을 맞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후 절이 세워졌지만 백룡이 품은 원한 때문에 훗날 불이 나 절이 망했다는 전승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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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의 삼정과 월애 이야기
광양에서는 예부터 백운산에 세 가지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봉황의 기운, 하나는 여우의 기운, 또 하나는 돼지의 기운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봉황의 기운을 받은 인물로 최산두를, 여우의 기운을 받은 인물로 월애를 이야기합니다. 전승 속 월애는 고려 때 옥룡 초암마을에서 태어나 뛰어난 미모와 지혜로 이름을 알렸고, 몽고 왕실과 관련된 자리에서도 고려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초암마을에 월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남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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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명당 이야기
약 300년 전 남만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먼 길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는 낮에는 봉강면 부저리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밤에는 험한 고개를 넘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어느 날 길에서 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의 목에는 비녀가 걸려 있었고, 만갑은 두려움을 참고 그 비녀를 빼 주었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만갑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행동했고, 만갑은 그것을 아버지의 묘를 쓸 좋은 자리로 알려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묘를 범명당 또는 효자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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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실 물맞이골 전설
구룡실에는 작은 폭포처럼 생긴 물맞이골이 있었고, 그 물에 몸을 맞으면 효험이 있다고 사람들이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상을 당한 사람이 몸이 아파 물을 맞으러 갔을 때 물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큰 뱀이 물길을 가로막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부정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 물의 효험이 사라졌다고 전합니다. 그래도 물맞이를 하려는 사람은 며칠 동안 비린 음식을 피하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뒤 찾아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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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리 쌍두마을 풍치나데 전설
옛날 쌍두마을에는 박씨 집안이 큰 부자로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스님들에게 잘 베풀지 않았고 오히려 괴롭혔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도사가 찾아와 좋은 묘자리를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박씨들이 도사의 말을 믿고 묘를 옮기자, 원래 묘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집안의 형편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좋은 자리를 둘러싼 옛사람들의 믿음과 마을에 전해지는 풍수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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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마을 효자전설
입암마을에 정씨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어 숭어고기를 먹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정씨는 겨울 냇가로 나가 얼음에 구멍을 내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숭어가 얼음 위로 튀어 올랐고, 정씨는 숭어를 잡아 어머니에게 먹였습니다. 어머니의 병이 나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심을 기려 소자문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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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마을 물바위 전설
고려가 망한 뒤 고려의 멸망을 슬퍼한 바위들이 어디선가 걸어서 광양으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마을 앞에서 빨래하던 사람들이 바위들이 울면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바위들이 우는구나’라고 말하자, 바위들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바위들이 남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광양시 자료에는 현재 그곳의 바위들이 지석묘로 보인다는 편집자 주석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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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계산 전설
백계산 절터 앞에는 옛날 큰 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선국사는 그 못을 메워 절을 널리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눈병이 난 사람은 못에 숯을 넣으면 낫는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사람들이 숯을 가져와 넣으면서 못이 메워졌다고 전합니다. 이후 백계사에 백씨 성을 가진 승려가 들어오면 절이 망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실제로 백씨 성을 가진 승려가 머문 뒤 큰불이 나 절이 타버렸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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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 팽나무 전설
장동에는 500년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큰 팽나무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무렵 밤에 이 나무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였을 때 왜병이 마을로 쳐들어왔고, 왜병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격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물러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찾아온 왜병들이 나무를 베려고 하자 가지가 떨어져 그들을 덮쳤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후 이 나무를 당산목으로 모시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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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리 용소 전설
옛날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길을 떠났습니다. 밤이 깊고 길은 험해 길을 잃은 선비는 큰 바위 옆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바위는 용소 바위였다고 합니다. 꿈속에 큰 용이 나타나 바위를 지나 아래 물길로 가면서 둑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선비에게 과거시험 문제를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잠에서 깬 선비는 시험을 보러 갔고 결국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용소 또는 용무쟁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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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를 구하고 은혜를 갚은 두꺼비
전라남도 광양시와 경상남도 하동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에는 두꺼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요. 옛날 강가에 살던 마음씨 착한 처녀가 부엌에 들어온 두꺼비를 가엾게 여겨 밥을 주며 정성껏 길렀대요. 삼 년이 흘러 두꺼비가 크게 자랐을 무렵, 갑자기 큰비가 내려 마을에 홍수가 났고 처녀도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었어요. 그때 두꺼비가 나타나 처녀를 등에 태우고 힘껏 헤엄쳐 강기슭까지 데려다주었대요. 처녀는 무사히 살았지만 두꺼비는 힘을 다 써 버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져요. 처녀는 두꺼비를 정성껏 묻어 주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고, 사람들은 이 일을 기려 그 강을 두꺼비를 뜻하는 한자를 넣어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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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필요한 보를 두고 내기를 한 사연, 광양 증보거리
전라남도 광양의 한 마을에는 물을 대는 보가 없어 조금만 가물어도 농사짓기가 힘들었어요. 마을을 지나던 스님은 이 사정을 알고 마을 사람을 위해 보를 쌓아 주겠다고 나섰대요. 마침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스님이 보를 쌓는 동안 자신은 옷을 짓고 밥상을 차려 놓겠다며 서로 내기를 하자고 했어요. 스님이 마지막 돌 하나만 올리면 보가 완성되는 순간, 갑자기 밥상을 들고 나타난 소리에 놀라 그만 돌을 놓치는 사고가 나고 말았대요. 이 안타까운 일 뒤에 마을 사람들은 보를 다시 쌓았고, 그래서 이곳을 보를 다시 쌓았다는 뜻으로 증보거리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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